용산의 제과Ⅱ 새로운 맛의 경험, 과자
  • 정은진 / 고려대학교 한국어문교육연구소 연구원
씹는 과자, 츄잉껌

  ‘과자’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새우깡이나 칸쵸처럼 봉지나 박스에 포장된, 짭짤하거나 달달한 간식들이 우리 머릿속에 그려지는 전형적인 ‘과자’이다. 그런데 1930년대의 광고를 보면 껌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씹는 과자(菓子)’라고 소개한다. 우리에게는 껌이 과자와 별개의 음식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씹는 과자’라는 표현이 낯설다. 껌뿐만이 아니라 이 시기에는 초콜릿, 사탕, 캐러멜에서 푸딩이나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이르기까지 서양과 일본에서 들어온 온갖 종류의 세련된 간식을 모두 ‘과자’라고 불렀다. 불과 100여 년 만에 ‘과자’의 의미가 변화한 것은 우리의 입맛이 과자라는 달콤하고 새로운 맛에 익숙해졌던 과정과 관련이 있다.
 

 
‘신문물’ 과자가 수용되고 정착되어 흔해지기까지

  과자라는 새로운 음식이 들어오기 이전, 조선에는 떡이나 강정, 약과나 중계, 엿이나 다식 등의 간식거리가 있었다. 서양과자를 처음 접한 조선 사람은 18세기 중국을 방문했던 연행사들로 추정된다. 그중 이기지는 『일암연기』에 서양떡(西洋餠)의 모양이 우리나라의 박계(薄桂)와 비슷했는데, 부드럽고 달았으며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아 ‘참으로 기이한 맛’이었다고 썼다. 그가 먹은 서양떡은 계란과 밀가루로 만든 카스테라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 사람이 처음 맛본 서양과자는 떡이나 유밀과와 유사하다고 여겨지는 한편, 맛과 재료의 차이로 인해 새로운 미식 경험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 말 개항으로 처음 수입된 설탕은 기존의 꿀이나 조청과 차원이 다른 달콤함을 냈다. 같은 시기 설탕을 넣어 만드는 과자 또한 일본 상인들로부터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는데, 일제는 과자 산업이 설탕을 경험하지 못했던 조선인의 음식 기호를 바꿀 장기적이고 유망한 산업이라 보고 장려했다. 그 결과 일본인 상권이 들어서는 곳곳마다 과자상과 과자점이 들어섰다.

  1900년대 이후에는 인천과 서울 등지의 구미 잡화점에서 서양과자를 수입해 판매했는데, 당시만 해도 과자는 고종이 하사하거나 박람회에 전시되는 귀한 상품이었다. 1920년대 이후 모리나가(森永), 메이지(明治), 글리코(グリコ) 등 일본의 과자 회사가 국내 시장에 진출하면서 신문과 잡지에 활발하게 광고를 냈고, 과자라는 대상이 대중에게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문명한 사람의 식탁에는 식후에 아름답고 맛조흔 과자가 반드시 잇다
「매암이」, 『동아일보』, 1925.8.16.

 
  소학생까지도 그저 사랑―사랑―하고 남녀 학생 간에 편지질을 하고 서로 추측하며 과자봉지로 폐백을 삼는다.
그리하야 엇던 얌전한 학생은 한 달에 과자대가 식대보다도 더 만타고 한다.
요리집 번창은 기생의 덕분이지만은 과자집 번창은 남녀학생의 연애 덕분이다. (…)
연애 폐물의 용달소―남녀교제의 媒介(매개) 聖殿(성전)인 과자점은 작구 번창하면 그만이겟지.
「신유행(新流行)! 괴유행(怪流行)! - 연애 폐물점 번창(戀愛幣物店 繁昌)」, 『별건곤』, 1928.12.


  근대의 서구적 이미지와 결합해 화려하게 광고된 과자는 당대인에게 특별한 먹거리, 세련된 도시인의 기호품으로 인식되었다. 신문 광고는 과자가 영양이 풍부한 문명인의 간식이라고 소개했고, 신식 학생들은 사랑의 표시로 과자 선물을 주고받았다.

  해방 이후 일제가 물러나자 일본인이 운영하던 과자 공장 중 다수는 한국인이 불하받아 운영하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는 미국 원조에 힘입어 국내 제과 산업이 호황을 맞는다. 비스킷, 사탕, 캐러멜, 껌, 초콜릿 등을 묶어 구성한 ‘종합 과자 선물 세트’는 1970~80년대 연말이나 명절 귀성길의 필수품이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고 먹거리가 다양해지면서 과자는 점차 동경의 대상에서 흔한 간식이 되어 갔고, 최근에는 높은 당과 열량으로 인해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까지 여겨 지고 있다. 백여 년 동안 과자의 위상은 달라졌다. ‘모던하고 새로운 맛’이었던 과자는 우리의 일상에 빠르게 스며들었고, 언제나 접할 수 있는 ‘익숙하고 늘 아는 맛’이 되었다.


 
‘과자’라는 이름의 시작과 변화

  ‘菓子(과자)’라는 단어는 일본어에서 근대적 의미가 성립되어 우리말에도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름에 튀기고 꿀에 버무린 전통 간식류를 ‘과줄’ 이라 불렀고, 19세기 전까지 ‘과자’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았다.

  일본어에서 ‘菓子(과자)’는 본래 과일을 의미하였는데, 헤이안 시대에 중국으로부터 경단과 비슷한 음식이 유입되고 무로마치 시대에 차 문화의 발달과 함께 다과가 발전하면서 ‘菓子(과자)’가 자연식품뿐 아니라 가공식품의 의미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16세기에 포르투갈, 스페인 선교사로부터 카스테라나 별사탕 등이 유입되고, 특히 메이지 시대 이후 서양에서 초콜릿, 비스킷 등의 신식 간식이 대거 들어오면서 ‘과자’는 서양과자(洋菓子)와 일본 과자(和菓子)를 넓게 포괄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었다.

  19세기 말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과자라는 신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가리키는 단어 ‘과자(菓子)’도 함께 차용되었다. 기존에 ‘과줄’이라는 단어가 있었음에도 ‘과자’라는 새로운 단어가 차용된 것은 대상이 기존의 개념 범주와는 다르게 인식되었음을 암시한다. 당시 사람들에게 ‘과자’는 기존의 전통 간식을 가리키는 ‘과줄’과 변별되는, “일본과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간식”을 가리키는 단어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어로부터 한국어에 수용된 ‘과자’는 별도의 어휘 변화를 겪었다. 20세기 초 ‘과자’는 모든 종류의 신식 간식을 통칭했다. 비스킷이나 쿠키, 케익, 카스테라 등 밀가루로 만든 것뿐 아니라 사탕, 캐러멜, 초콜릿, 양갱, 껌, 아이스크림까지도 모두 ‘과자’로 묶였다. 껌은 ‘씹는 과자’나 ‘교과자(嚙菓子)’, 사탕류는 ‘이과자(飴菓子)’나 ‘감과자(甘菓子)’, ‘사탕과자(砂糖菓子)’ 등으로 불렸고, 아이스크림 역시 ‘아이스쿠리’ 외에 ‘빙과자(氷菓子)’, ‘얼음과자’라는 별칭이 쓰였다. ‘과자’가 넓은 의미 영역을 포괄하면서 엿이나 유과 등도 ‘조선과자’로 묶여 ‘과자’라는 이름에 편입되었다.

  과자는 그 종류가 무엇이든 모두 먹어본 적 없는 낯선 음식이었다. 한꺼번에 들어온 여러 가지 대상의 이름을 일일이 구별하기가 어렵기에, 물 건너온 새로운 간식은 모두 범박하지만 세련된 이름 ‘과자’로 소개되고 기억되었다. 과자 광고는 ‘얼음’, ‘씹는’ 등의 수식어, ‘초코레트’, ‘비스킷’ 등의 하위어를 덧붙여 그것이 과자의 한 종류이되 어떠한 특성이 있는지를 설명하였다.

  새롭고 세련된 간식이었던 과자는 한국인의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서 일상의 흔한 간식이 되어 갔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종류의 과자를 경험하면서 각각의 서로 다른 특성을 변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사탕’, ‘캐러멜’, ‘초콜릿’, ‘젤리’, ‘껌’ 등이 각각의 개념과 이름으로 기억되고, 자연스레 ‘과자’는 범주 내에서 가장 전형적인, “반죽을 튀기거나 구운 간식”으로 의미가 한정되었다. ‘과자’의 의미 축소는 새로운 맛의 경험이 수용되고 익숙해지는 과정, 대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이 만든 자연스러운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