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의 제과Ⅱ
1930년대 백화점에서 만난 과자들
- 글
- 최지혜 / 미술사학자
1933년 4월 초, 경성에서 과자축제(菓子祭)가 열렸다. 조선신궁에서 일본 과자 신 다지마모리(田道間守)에게 제를 올림과 동시에 백화점과 유명 과자점에서는 과자 대매출 행사를 실시했다. 경성과자주식회사의 대표 상품인 ‘잣사탕’, 조선 풍속이나 금강산, 경성 명소 등이 찍힌 센베이를 비롯하여 미쓰코시, 조지야, 미나카이, 히라다 백화점 식품부의 갖가지 과자들이 단 것을 좋아하는 이른바 ‘감당(甘党)’들을 사로잡았다.

‘과자제’ 연합 광고, 『경성일보』, 1934.4.1.
미쓰코시, 조지야, 히라타, 미나카이 백화점을 비롯하여 경성과자주식회사, 메이지야 같은 곳에서 광고를 실었다.
1. 「京城の味覚極樂(わ), お菓子の卷」,『경성일보』, 1938.1.20.‘과자제’ 연합 광고, 『경성일보』, 1934.4.1.
미쓰코시, 조지야, 히라타, 미나카이 백화점을 비롯하여 경성과자주식회사, 메이지야 같은 곳에서 광고를 실었다.
과자는 전통적으로 집에서 만들거나 가내수공업식 소규모 업체들이 만들어 팔았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초 경성에 자리한 일본 업체들은 모찌, 밤과자, 센베이, 양갱, 카스테라 같은 새로운 과자를 시장에 내놓았다. 점차 제법 큰 규모의 과자 공장도 들어섰다. 과자 제조 판매 공장은 주로 용산에 터를 잡은 반면 소매점, 즉 과자점은 본정(本町)에 밀집해 있었다. 1938년 경성 과자에 대해 품평한 신문 기사에 따르면 당시 과자 도소매점은 170군데이고 종로에만도 조선인 과자점이 45개나 있었다고 하니 그 수가 상당하다.1 용산의 경성과자주식회사, 모리나가(森永) 공장, 메이지(明治)제과와 같이 큰 회사에서는 고도의 기술과 자본을 요하는 초콜릿, 비스킷, 웨하스, 드롭스, 캐러멜을 생산했고 재조 일본인이 세운 중소 회사에서는 양갱, 건빵, 드롭스를, 그리고 중소 제과점에서는 센베이, 만주, 모찌, 오꼬시, 모나카, 콩과자, 카스테라 같은 것들을 만들었다. 경성고보에 재학 중이던 한 소년의 일기에 따르면 1930년 가을 ‘모단(모던) 빵’이라고 부른 카스테라가 크게 유행했다.
1938년 신문에 실린 경성의 대표 과자들, 『경성일보』, 1938.1.20.
종로의 화신 백화점을 포함한 경성의 5대 백화점에서는 과연 어떤 과자들이 인기였을까. 과자는 크게 보면 화과자와 양과자로 대별되었다. 우선 화과자의 대표격으로는 양갱과 센베이(전병)가 있었다. ‘양갱(羊羹)’은 원래 중국에서 양고기를 끓인 국이었는데 일본에 전해지면서 팥을 삶아 체에 거르고 설탕, 밀가루, 한천 등을 섞어 만든 것으로 변했고 ‘요깡’이라고 불렀다. 만드는 방법에 따라 증양갱(蒸羊羹), 연양갱(練羊羹), 수양갱(水羊羹)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삼색양갱과 오색양갱을 비롯하여 과일 풍미가 느껴지는 유자양갱, 귤양갱, 사과양갱, 그리고 견과류가 들어간 밤양갱, 잣양갱, 호두양갱 그리고 요즘 디저트로 많이 활용되는 말차를 이용한 말차양갱도 유명했다. 1935년 미나카이 백화점에서는 진남포 산업조합에서 제조한 사과양갱을 판매했다. 그러고 보면 최근 가수 비비의 노래〈밤양갱〉의 가사처럼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의 역사는 거의 100년은 된 셈이다.
화과자 중에서 만주도 빼놓을 수 없다. 밀가루 반죽에 다양한 소를 넣고 찐 이것은 고학생들이 “만주노 호야호야! (만주가 따끈따끈!)”라고 외치며 나무상자를 매고 골목을 누비던 서민적인 간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판매한 만주는 상자에 포장되어 고급스러운 상품으로 변신했다. 마찬가지로 떡갈나무 잎으로 싼 ‘카시와모찌(柏餠)’ 또한 행상이 파는 찹쌀떡(모찌)이나 망개떡보다 훨씬 고급스럽게 보였다. 1931년 미쓰코시 식품부에서 삼성사(三星社)에서 제조한 계란과자(玉子燒)를 새로이 판매했다. 막대 형태의 이것은 계란 노른자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영양분과 부드러운 식감 및 맛을 자랑했고 행사 기간에 구매한 고객에게는 육아 표준표를 증정했다.2 1934년 무렵부터 ‘고급 증답품(선물)’으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경성모나카’와 ‘춘묘산(春畝山)’이라는 과자였다. 단 맛이 강하고 독특한 풍미가 있는 춘묘산은 1930년대 주요 관광 코스로 등장한 춘묘산 박문사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자는 관광객들이 손쉽게 구매하는 대표적인 기념품으로서 명승고적을 새긴 토산품은 인기였다. 예컨대 ‘금강전병’, ‘조선팔경전병’ 같은 것이 대표적이었고 더불어 조선의 대표 상품인 인삼을 활용한 ‘인삼납당(人蔘納糖)’3 이 토산품에 속하는 과자였다. 장충단을 허물고 들어선 이토 히로부미(그의 호가 춘묘)를 기리는 절 춘묘산 박문사에서 따온 ‘춘묘산’ 과자도 비슷한 맥락에서 미쓰코시의 대표 토산품이 된 것이 아닐까.
2.「玉子燒」, 『경성일보』, 1931.10.21.
3. 일본의 아마낫토(콩과자)와 유사한 일종의 인삼정과로 추정된다.
화과자 중에서 만주도 빼놓을 수 없다. 밀가루 반죽에 다양한 소를 넣고 찐 이것은 고학생들이 “만주노 호야호야! (만주가 따끈따끈!)”라고 외치며 나무상자를 매고 골목을 누비던 서민적인 간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판매한 만주는 상자에 포장되어 고급스러운 상품으로 변신했다. 마찬가지로 떡갈나무 잎으로 싼 ‘카시와모찌(柏餠)’ 또한 행상이 파는 찹쌀떡(모찌)이나 망개떡보다 훨씬 고급스럽게 보였다. 1931년 미쓰코시 식품부에서 삼성사(三星社)에서 제조한 계란과자(玉子燒)를 새로이 판매했다. 막대 형태의 이것은 계란 노른자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영양분과 부드러운 식감 및 맛을 자랑했고 행사 기간에 구매한 고객에게는 육아 표준표를 증정했다.2 1934년 무렵부터 ‘고급 증답품(선물)’으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경성모나카’와 ‘춘묘산(春畝山)’이라는 과자였다. 단 맛이 강하고 독특한 풍미가 있는 춘묘산은 1930년대 주요 관광 코스로 등장한 춘묘산 박문사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자는 관광객들이 손쉽게 구매하는 대표적인 기념품으로서 명승고적을 새긴 토산품은 인기였다. 예컨대 ‘금강전병’, ‘조선팔경전병’ 같은 것이 대표적이었고 더불어 조선의 대표 상품인 인삼을 활용한 ‘인삼납당(人蔘納糖)’3 이 토산품에 속하는 과자였다. 장충단을 허물고 들어선 이토 히로부미(그의 호가 춘묘)를 기리는 절 춘묘산 박문사에서 따온 ‘춘묘산’ 과자도 비슷한 맥락에서 미쓰코시의 대표 토산품이 된 것이 아닐까.
2.「玉子燒」, 『경성일보』, 1931.10.21.
3. 일본의 아마낫토(콩과자)와 유사한 일종의 인삼정과로 추정된다.
미쓰코시에서 판매한 계란과자 『경성일보』, 193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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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카 | 카시와모찌 |
양과자로는 초콜릿이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었다. ‘연애사탕’이라고 불릴 정도로 부드럽고 달콤한 초콜릿은 예쁜 상자에 포장되어 연인의 선물로 제격이었다. 미국 허쉬 초콜릿을 모방하여 포장지에 초콜릿색 바탕에 금색 영문자를 큼지막하게 박은 ‘Meiji MILK CHOCOLATE’과 모리나가 ‘파라마운트’ 초콜릿 같은 것은 여성들이 ‘한 개 두 개 자꾸 받고 싶은 첨단을 것는 과자’였다.4
4. 「사랑을 마추어 내는법」, 『신여성』, 1931.6.
‘미와 건강으로의 근대 식품’이라고 광고한 메이지밀크초콜릿, 『경성일보』, 1936.3.9.
초콜릿보다 생산비가 적고 단시간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것이 캐러멜이었다. 노란색 상자에 날개 단 천사가 창업자의 머리글자 TM을 붙잡고 있는 로고가 있는 ‘모리나가 밀크 캐러멜’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계정식이 외출에서 돌아올 때 네 살배기 딸 정향을 위해 사 들고 온 것도 모리나가 캐러멜이었다.
아버지가 들어서면 정향(貞香)이는 또 아버지 미루쿠 안 사왔어여? 한다. 삼영(森永) 캬라멜이 좋다고 박람회를 가드니 잔뜩 사가지고 와서는 어데다 감추어 두고는 정향이를 주고주고 한다. 많이도 않 주고 단 한 개 아니면 두 개! 시나서 못 견댈 지경이다. 그러나 어린애들은 아버지한테 받어 먹는 과자(菓子)는 더 맛이 있는 모양이다.
「즐거운 나의 가정」, 『삼천리』, 1940.12.
계정식이 딸에게 주었던 삼영 과자는 “청신한 의장, 순량한 품질”이라고 광고하며 삼복 선물로 신뢰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모리나가는 〈캐러멜예술 전람회〉를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과자 제작 공정 실연·판매를 화신 백화점에서 여는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5 모리나가에 버금갈 만큼 유명한 것이 글리코 캐러멜이었다. 결승선에 들어오는 마라톤 선수의 이미지를 쓴 이것은 굴을 끓여 추출한 글리코겐으로 만들었다. ‘한 알에 300미터’라는 광고를 하며 자양, 에너지를 강조했다.
5. 『경성일보』,1933.5.4., 『조선신문』,1934.4.15.
계정식이 딸에게 주었던 삼영 과자는 “청신한 의장, 순량한 품질”이라고 광고하며 삼복 선물로 신뢰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모리나가는 〈캐러멜예술 전람회〉를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과자 제작 공정 실연·판매를 화신 백화점에서 여는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5 모리나가에 버금갈 만큼 유명한 것이 글리코 캐러멜이었다. 결승선에 들어오는 마라톤 선수의 이미지를 쓴 이것은 굴을 끓여 추출한 글리코겐으로 만들었다. ‘한 알에 300미터’라는 광고를 하며 자양, 에너지를 강조했다.
5. 『경성일보』,1933.5.4., 『조선신문』,1934.4.15.
‘드롭스’라고 부른 사탕류도 인기 있는 과자였다. 다양한 과일 맛이 나는 ‘사쿠마식드롭스(サクマ式ドロップス)’ 나 하얗고 우유 맛이 진한 유가 사탕인 ‘비가(ビガ―)’같은 사탕류는 예쁜 알루미늄 캔에 들어있었다. 설탕이 들어간 달디단 과자와 사탕은 영양이 부족한 시대에 자양과 맛을 무기로 우리의 일상을 빠르게 점령했다. 그 때문에 우리 한과나 일본식 화과자는 전통의 풍미가 점점 사라지고 서로 절충되어 양과자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 모리나가캐러멜 | 글리코캐러멜 | 도쿄 사쿠마제과주식회사의 사쿠마식 드롭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