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의 제과Ⅱ
1970년대 한국 제과업의 발전과정: 근대적 대기업의 탄생과 소비사회의 서막
- 글
- 이종현 /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
1970년대 한국은 흔히 ‘중화학공업의 시대’로 불린다.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 출 중심 산업이 국가의 총력 지원 아래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 초석을 놓고 가동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이런 ‘국가 주도 산업화’ 시대에 국가의 시야 밖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근대적 성장 궤도에 진입하던 산업이 있었다. 바로 제과업, 즉 빵과 과자를 만드는 산업이었다.
소비재 산업은 정부의 육성 대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근검절약의 정신’을 해치는 것 아닌가 하는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지원은커녕 규제를 늘 염려해야 했던 부문이었다. 중화학공업 외에는 숨을 죽이던 시대에 그러나, 시장에서는 한국적 소비 산업의 근대화가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1970년대 초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대체로 연 10%를 넘나들었다. 해마다 부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으로 높은 성장세를 유지했다. 성장이 지속되고 구매력을 가진 도시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먹고사는 것’ 이상의 소비를 희망하게 됐다. 아이에게 과자를 사주고, 가족이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 일은 근대적 도시 생활의 상징이 됐다. 제과업은 이러한 조건 속에서 정부의 지원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열망을 에너지로 성장했다. 이 시기 제과업은 절대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제조업 평균과 맞먹는 성장세를 나타냈다. 이를 주도한 것이 해태·롯데· 동양(현 오리온) 같은 기억에도 새로운 한국의 대표적 제과업체들이었다.
1970년대 전후 이들의 성장은 단순히 매출의 증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해태·롯데·동양은 모두 수작업 수준의 제과에서 기계화된 공장제 생산으로 급격한 전환을 이 시기에 이루게 된다.
해태제과는 1967년에 초콜릿 생산을 시작했으며 일본과 영국으로부터 비스킷의 대량 생산을 위한 설비를 들여왔다. 또한 1970년에 덴마크 호이어사로부터 아이스크림 자동 생산 설비를 도입해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광고로 유명한 부라보콘을 출시했다.
롯데제과는 일본 롯데의 기술과 자본을 도입해 1967년 설립 초기부터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생산을 시작했다. 바브민트껌, 빠다크림빵을 포함해 껌·빵·비스킷 라인을 구축한 롯데는 1968년에 영등포구 양평동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고 서독과 이탈리아로부터 대량 생산 설비를 도입했다.
동양제과는 1956년 풍국제과를 인수해 이름을 동양제과공업주식회사로 변경하면서 출범하게 됐다. 캔디류와 캐러멜 비스킷 등의 생산을 꾸준히 늘려오던 동양제과는 1960년대 들어 일본으로부터 대량 생산을 위한 배합기를 도입했다. 또한 상품화의 필수 설비인 자동 포장기를 1968년에 도입해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인기가 식지 않는 초코파이가 1974년에 처음 출시되기도 했다.
소비재 산업은 정부의 육성 대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근검절약의 정신’을 해치는 것 아닌가 하는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지원은커녕 규제를 늘 염려해야 했던 부문이었다. 중화학공업 외에는 숨을 죽이던 시대에 그러나, 시장에서는 한국적 소비 산업의 근대화가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1970년대 초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대체로 연 10%를 넘나들었다. 해마다 부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으로 높은 성장세를 유지했다. 성장이 지속되고 구매력을 가진 도시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먹고사는 것’ 이상의 소비를 희망하게 됐다. 아이에게 과자를 사주고, 가족이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 일은 근대적 도시 생활의 상징이 됐다. 제과업은 이러한 조건 속에서 정부의 지원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열망을 에너지로 성장했다. 이 시기 제과업은 절대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제조업 평균과 맞먹는 성장세를 나타냈다. 이를 주도한 것이 해태·롯데· 동양(현 오리온) 같은 기억에도 새로운 한국의 대표적 제과업체들이었다.
1970년대 전후 이들의 성장은 단순히 매출의 증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해태·롯데·동양은 모두 수작업 수준의 제과에서 기계화된 공장제 생산으로 급격한 전환을 이 시기에 이루게 된다.
해태제과는 1967년에 초콜릿 생산을 시작했으며 일본과 영국으로부터 비스킷의 대량 생산을 위한 설비를 들여왔다. 또한 1970년에 덴마크 호이어사로부터 아이스크림 자동 생산 설비를 도입해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광고로 유명한 부라보콘을 출시했다.
롯데제과는 일본 롯데의 기술과 자본을 도입해 1967년 설립 초기부터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추고 생산을 시작했다. 바브민트껌, 빠다크림빵을 포함해 껌·빵·비스킷 라인을 구축한 롯데는 1968년에 영등포구 양평동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고 서독과 이탈리아로부터 대량 생산 설비를 도입했다.
동양제과는 1956년 풍국제과를 인수해 이름을 동양제과공업주식회사로 변경하면서 출범하게 됐다. 캔디류와 캐러멜 비스킷 등의 생산을 꾸준히 늘려오던 동양제과는 1960년대 들어 일본으로부터 대량 생산을 위한 배합기를 도입했다. 또한 상품화의 필수 설비인 자동 포장기를 1968년에 도입해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인기가 식지 않는 초코파이가 1974년에 처음 출시되기도 했다.
기계화와 자동화를 통한 대량생산체제는 그만큼 자본과 조직의 규모 확대를 수반했다. 설비투자와 품질관리를 위한 전문 인력이 채용됐고 생산·영업·홍보 부서가 구분된 근대적 조직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기업들은 기존의 소유자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 전문경영인을 두고 관리체계를 세분화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제과업은 더 이상 소유자 몇 명이 이끄는 전근대적 제조업이 아니라 조직이 움직이는 근대적 대기업으로 발전하게 됐다.
그 전환의 또 하나 결정적 계기는 유통 판매 조직의 내부화이다. 초기의 제 과업체들은 판매 기능을 대부분 전통시장의 도매상에 의존했다. 생산량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유통망까지 구축할 여력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유통 단계는 길고 거대 도매상과 외상거래가 쌓여 재무적 위험에 직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생산과 판매의 효율적 연결을 구축할 수가 없고 소비자의 반응을 직접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시장의 수요가 증가하고 자동화 설비의 도입으로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 자체 유통망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매출과 수익의 증가에 따라 투자여력도 강화됐다.
3개 제과업체는 1970년대 초반 비슷한 시기에 유통 판매 조직의 내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1965년부터 유통 조직을 정비하기 시작한 해태제과 는 1971년에 도매 거점의 역할을 하는 ‘해태센터’를 전국 주요 지역에 설치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직영 소매망으로 주요 상권에 ‘해태의 집’을 열었다. 롯데제과 역시 1971년부터 직판제를 도입해 서울과 지방을 순회하는 ‘루트 판매제’를 시행 했고 1973년에는 전국에 57개의 직매소를 설치해 유통 판매망을 조직 내부로 흡수했다. 동양제과는 1971년에 처음으로 서울 종로에 직판소를 설치하고 점차 조직을 늘려나갔다. 1978년에는 전국에 48개의 직판소를 보유하게 됐다. 이어 동양제과는 그룹 안에 유통 판매 전문 회사(동양종합상사주식회사)를 만들어 그룹 차원에서 유통망과 생산조직을 연계하는 대량 생산과 대량 유통의 체계를 구축했다.
그 전환의 또 하나 결정적 계기는 유통 판매 조직의 내부화이다. 초기의 제 과업체들은 판매 기능을 대부분 전통시장의 도매상에 의존했다. 생산량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유통망까지 구축할 여력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유통 단계는 길고 거대 도매상과 외상거래가 쌓여 재무적 위험에 직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생산과 판매의 효율적 연결을 구축할 수가 없고 소비자의 반응을 직접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시장의 수요가 증가하고 자동화 설비의 도입으로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 자체 유통망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매출과 수익의 증가에 따라 투자여력도 강화됐다.
3개 제과업체는 1970년대 초반 비슷한 시기에 유통 판매 조직의 내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1965년부터 유통 조직을 정비하기 시작한 해태제과 는 1971년에 도매 거점의 역할을 하는 ‘해태센터’를 전국 주요 지역에 설치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직영 소매망으로 주요 상권에 ‘해태의 집’을 열었다. 롯데제과 역시 1971년부터 직판제를 도입해 서울과 지방을 순회하는 ‘루트 판매제’를 시행 했고 1973년에는 전국에 57개의 직매소를 설치해 유통 판매망을 조직 내부로 흡수했다. 동양제과는 1971년에 처음으로 서울 종로에 직판소를 설치하고 점차 조직을 늘려나갔다. 1978년에는 전국에 48개의 직판소를 보유하게 됐다. 이어 동양제과는 그룹 안에 유통 판매 전문 회사(동양종합상사주식회사)를 만들어 그룹 차원에서 유통망과 생산조직을 연계하는 대량 생산과 대량 유통의 체계를 구축했다.
현대 경영사의 초석을 다진 경영사학자 알프레드 챈들러(Alfred D. Chandler Jr.)는 생산과 유통이 결합된 복합조직(Multiunit)과 전문경영자(Salaried manager)의 존재를 근대적 산업 대기업(Modern Industrial Enterprise)의 요소로 정의했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은 조직의 관리 체계와 운영 방식에서 전근대적인 기업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대규모 사업체가 등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던 1970년대에 국가의 시야가 미치지 않던 소비재 산업 부문에서 소비자의 열망만으로 근대적 산업 대기업이 등장했다.
제과업은 한국 경제에서 보기 드문 시장 주도형 성장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지원이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이 산업을 키웠다. 기업은 소비자의 기호를 파악해 전략적으로 조직을 혁신하며 근대적 산업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확장되는 한국 소비문화의 구조적 기반이 됐다. ‘국가의 시대’라 불린 1970년대에도 시장과 소비는 스스로의 논리를 만들어가며 국가의 의도와는 다른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제과업이 있었다.
제과업은 한국 경제에서 보기 드문 시장 주도형 성장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지원이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이 산업을 키웠다. 기업은 소비자의 기호를 파악해 전략적으로 조직을 혁신하며 근대적 산업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확장되는 한국 소비문화의 구조적 기반이 됐다. ‘국가의 시대’라 불린 1970년대에도 시장과 소비는 스스로의 논리를 만들어가며 국가의 의도와는 다른 풍경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제과업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