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경성근방도 들여다보기
- 글
- 이승규 / 용산역사박물관 학예연구원
「경성근방도(京城近傍圖)」, 1913 115 × 108㎝
지도는 단순히 길을 안내하는 그림을 넘어, 시대를 담는 그릇이자 역사를 기록하는 문서이다. 특히 근대의 격변기 속에서 제작된 지도는 당대의 권력이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구획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가 된다. 우리 관이 소장한 「경성근방도(京城近傍圖)」는 바로 그러한 시대의 시선이 담긴 대표적인 유물이다. 이 지도는 식민 통치의 기반을 다지던 일제의 눈으로 경성과 그 근방을 정밀하게 기록하며,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던 도시의 초상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경성근방도」는 1912년(대정 원년) 8월 임시토지조사국 군참모부에서 제작하고 1913년 재인쇄한 1 : 10,000의 대축척 지도로, 도성 및 주요 도로, 건물을 간략히 묘사하는 동시대 다른 지도와 달리 매우 높은 정밀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정밀함 덕분에 주요 도로와 철로, 한양도성의 성곽과 개별 건물 등 구조물의 윤곽은 물론, 연못과 하천, 세밀한 등고선으로 지형의 높낮이까지 판독이 가능하여, 단순한 지리 안내를 넘어 군사 작전 및 도시 계획을 위한 실용적 도구로서의 목적을 뚜렷이 드러낸다.
이러한 제작 의도는 지도의 형태에서도 드러난다. 기본 격자는 정사각형으로 구획되어 있지만, 총 넓이는 115×108cm로 가로가 조금 더 긴 직사각형의 형태를 띤다. 이는 뚝섬의 수원지(水源池)와 청량리역을 포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우측 경계가 돌출된 결과이며, 핵심 시설을 빠뜨리지 않으려는 제작 목적이 형태 자체에 반영된 것이다.
「경성근방도」 청량리역 ― 뚝섬 일대
또한, 다른 경성부 외곽 지역을 주요 지형과 간 선도로 위주로 비교적 간략히 묘사한 데 반해, 유독 용산 일대에 묘사를 집중하였다. 병영의 건물 배치, 철도 정거장과 복잡한 선로망, 철도 관사촌의 개별 주택 부지까지 정밀하게 담아냈다. 이러한 '묘사의 불균형'은 ‘용산’을 단순한 경성의 근방을 넘어, 군사 및 행정적으로 특별 관리할 핵심 거점으로 인식했음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경성근방도」가 그려진 1910년대 초반은 용산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던 시기였다.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용산을 본격적으로 군사기지화 하였다. 전쟁 수행과 대륙 진출을 위해 거대한 병영을 건설하고,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경의선과 경 부선 등 철도 시설을 급속히 확장하며, 수많은 일본 군인과 철도 종사자, 그리고 그 가족들의 이주를 불러왔다.
새로운 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도시 기반 시설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고, 그중 시급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의료 시설이었다. 철도 부설 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외상 환자들을 치료하고, 안정적인 철도망 운영의 핵심인 종사원들의 건강과 위생을 관리하는 것은 식민 통치 기반을 다지는 데 필수적인 과제였다.
「경성근방도」 용산역과 동인병원
(현재 용산역사박물관 자리)
바로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탄생한 기관이 지도에 선명하게 표기된 ‘동인병원(同仁病院)’1 이다. 1911년 평양의 도가창고(塗家倉庫) 및 계정역사(鷄井驛舍)를 이전하여 진료소를 개축2하는 등 용산에 의료 시설 수요가 꾸준히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철도 종사원과 그 가족들을 우선으로 진료했지만, 1929년에 발행된 『용산철도의원요람(龍山鐵道醫院 要覽)』을 통해, 병원이 1920년대부터 철도 종사자만을 위한 시설을 넘어 용산의 일본인 거주지를 중심으로 의료 수요를 담당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 1907년 동인회(同仁会)가 용산 철도관사 5등 관사 2호 4동을 개조하며 설립된 병원. 1913년 9월 동인회와 계약 해지 후 본관을 신축하며, 용산철도병원으로 개칭한다.
2. 문화재청, 『구 용산철도병원 본관 기록화 조사 보고서』, 문화재청, 2012.
동인병원을 포함한 1910년대 용산의 변화 모습은 「용산시가도(龍山市街圖)」와 비교하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용산 일본군 기지 2차 확장(1915~1922)으로 소멸하는 ‘둔지미(屯之味)’와 같은 전통 마을의 마지막 흔적이 「경성근방도」에는 아직 남아있지만, 「용산시가도」에서는 이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일본군 병영과 연병장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경성근방도」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1912년 용산의 지리 정보를 넘어, 전통적 공간 질서가 해체되고 오늘날 용산의 도시 구조를 낳은 격변의 시작점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경성근방도」 1912년 둔지미 일대
「용산시가도」 1932년 둔지미 일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자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