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해방촌에서 살아 숨 쉬는 니트 산업
  • 이나영 / 강원대학교 DMZ접경지역연구소 연구교수
서울의 남산 아래 첫 마을, 해방촌을 아시나요?
 
해방촌은 행정구역 상 용산구 용산동2가 일대를 부르는 명칭으로 해방과 함께 형성되었다 하여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45년 광복 직후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북한에서 월남한 실향민들이 집단적으로 촌락을 이루며 거주하게 되었다. 해방촌은 일제강점기 당시에 조선신궁의 일부와 일본군 제20사단의 사격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월남인들은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도심과 접근성이 용이하고 교통이 편리한 해방촌으로 이주하여 일본 신사가 있던 자리와 보성여고 주변으로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평안북도 선천에서 내려온 기독교인들이 많았으며 종교적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정착민들의 자발적인 교육과 사회복지에 의한 주거 환경 및 공공 인프라 확충 등으로 도심 주거지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해방촌 주민들이 정착한 이후 가장 주된 경제활동은 사제연초제조업이었으며 전체 주민들의 80%가 이 일에 종사했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와 섬유산업의 발달 등으로 1960년대 이후에는 일명 ‘요꼬’라 불리는 편물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늘어났다. 해방촌은 편물 가내수공업이 활기를 띠게 되면서 1968년 형성된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니트 산업도 활성화되었다. 해방촌은 주변에 서울역과 남대문 시장 등이 가깝게 위치하고 있어 니트 산업 상권의 제조업 기지가 되었다. 1970~1980년대 부흥했던 해방촌의 니트 산업은 1990년대부터 지역 산업의 쇠퇴와 시장 구매력 저하 등으로 급속히 감소하게 되었다.


도시재생과 니트 산업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는 과거 미군 부대 주변 지역으로 외국인이 거주하며 다문화 상권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2010년대 중반에는 임대료가 비싼 이태원과 경리단길 상권을 피해 이동한 젊은 예술가들과 창업자들이 유입되면서 해방촌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해방촌은 남산 고도지구 내 위치하고 있는 구릉지형 주거지역으로 고도제한에 따른 주거지의 노후화, 지역 산업 쇠퇴에 따른 지역 상권 침체 등으로 2015년 근린재생 일반형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지정되었다. 2016년부터 5년 동안 추진된 도시재생사업으로 해방촌은 낙후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다양한 주민공모 사업을 통해 주민역량을 강화하는 등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였다. 또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신흥시장 활성화, 공방/니트 산업 특성화 지원 등을 추진하면서 해방촌의 니트 산업도 다시 조명 받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 니트 산업이 지역의 대표 산업으로 자리를 잡게 되고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서 해방촌 도시재생의 주요 지원 사업에 포함되었다. 과거 해방촌 지역의 산업 기반이었던 니트 산업과 청년 유입으로 활발해지고 있는 예술 공방을 결합해 특성화를 추진하는 전략은 해방촌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시장 내 빈 점포를 예술 공방, 청년 창업 공간 등으로 조성하고 해방촌 지역 내 젊은 예술인과 디자이너, 니트 산업 종사자 등에게 시장 공간을 저렴하게 임대해 주어 이들이 재능기부 등을 통해 시장 활성화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방안이었다. 해방촌에서 20년 이상 니트 상품을 생산해 온 종사자를 중심으로 ‘해방촌 니트 패션 협동조합’도 설립되면서 공동 판매장 조성, 온라인 플랫폼 구축, 공동상품 기획 및 디자인 등 도시재생사업과 연계된 계획을 추진하였다. 2019년 4월 30일에는 해방촌 공방 니트 공동 전시 판매장(해방상점)의 개소식이 열렸다.

 

해방상점 홍보물


해방상점 전경

 

지역사회 밀착형 니트 생산 공동체

 
과거 니트 산업은 가내수공업이 토대가 되어 해방촌의 경제활동을 책임지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지역과 밀착된 니트 생산 공동체를 중심으로 해방촌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는 해방촌에 니트 공장이 300여 개가 있을 정도로 번성하였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주민들도 고령화되고 해방촌의 인구도 감소되면서 사업체 수도 지속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니트 생산기지의 상당수가 해외나 타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해방촌의 니트 업체도 급속히 감소하게 되었다. 2016년에 30~40여 개의 니트 공장이 해방촌에 분포하고 있었지만 2024년에는 20여 개의 업체만이 니트 산업을 이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해방촌의 니트 공장은 주로 다세대 주택 1층이나 지하에 있으며 간판이나 상호가 없어 쉽게 찾을 수 없다. 소규모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니트 공장은 해방촌 오거리 일대와 신흥시장에 밀집해 있다. 니트 산업은 비수기와 성수기가 구분되며 특히 비수기인 여름철에는 단순한 주문 생산도 힘들어져 고용의 불안정화로 인력수급에도 차질이 생긴다. 

해방촌 니트 공장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니트 원사 생산부터 편직(실로 원단을 짜는 공정), 가공 등 니트를 만드는 공정 전체는 모두 해방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즉 원스톱으로 니트 생산을 하는 장인들이 모여 지역에서 연대와 협력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니트는 종류에 따라 원사 및 편직 과정이 달라지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해방촌의 니트 생산 공동체는 니트 제조업의 분업화로 인해 주민들의 유대감이 높고 자연스럽게 경제 기반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현재 니트 산업 종사자들의 평균 연령대는 50~60대가 대다수이므로 시대의 변화에 맞춰 젊은 층의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기획과 디자인 개발 분야 등에서 협업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해방촌의 니트 산업은 해방촌 의 형성과 함께 주민들에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해방촌 주민들은 니트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 주었다. 니트 산업은 해방촌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살아 숨 쉬며 공존하고 있는 지역 자산으로 의미가 있으며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정책이 개발된다면 지역의 정체성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소규모 봉제 공장



니트 가다 작업
니트 제작을 위해 쇠 모양으로 본을 뜨는 틀



니트 아이롱 작업 1
워싱 작업(세탁 및 건조)이 끝난 니트들에 가다를 끼고 다리미질을 하는 것



니트 아이롱 작업 2
디자이너들의 작업지시서를 바탕으로 샘플에 표시된 수정사항을 적용하여 아이롱 작업을 한다.
니트는 일반 봉제 원단하고 다르게 신축성이 있어서 사이즈 조절이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