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오래된 아파트 중산시범아파트 ― 한강의 기념비
  • 정재호 / 세종대학교 회화과 교수
강변북로를 달리는데 원효대교 옆으로 붉은 벽돌 건물이 휘익 지나간다. 흰색 콘 크리트 프레임에 붉은색 벽돌을 채워 넣은 건물 벽에는 검은 창문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옥상에는 안테나와 거기서 흘러내린 전선들이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다. 회색빛으로 된 고만고만한 아파트들이 줄지어 있는 강변로에 이 아파트의 돌연한 등장은 밋밋한 강변의 풍경에 어떤 ‘파격’을 던져준다. 그리고 그 강렬한 붉은색 패턴에 의해 한 번 각성된 눈은 이후로 펼쳐지는 강변의 풍경을 바라보는데 ‘색깔’이라는 하나의 인식적 틀을 제공해 준다.

차를 몰아 동쪽으로 가는 중에 강북의 색깔은 붉은색과 회색 사이를 오간다. 강남쪽의 풍경이 완전히 회색 아파트의 병풍으로 둘러쳐져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강로를 지나면 강북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이촌 1동과 서빙고동의 아파트 단지가 나타난다.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들 앞으로 거대한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이 아파트들은 회색빛 대신 반사체의 미끄러운 표면을 가지고 있다. 단지가 끝나고 반포대교 즈음에 오면 붉은색과 회색이 적당히 어우러진다. 멀리 있는 원경에는 낮은 주택가 사이사이로 흰색 아파트들이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형세가 계속되다가 강변역 즈음에 가서 다시 고층 아파트 군락이 형성되고 그 가운데에는 반사체의 테크노마트 빌딩이 은빛 자태를 뽐내며 자리 잡고 있다. 회색, 붉은색, 그리고 은빛 반사체로 이루어지는 강변로의 풍경은 그 색깔과 혼색의 비율에 따라 그 지역들의 경제적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서울의 허리를 가로지르며 채색되어 있는 그 경제-색띠의 한 가운데에 마치 허리 띠의 버클처럼 채워져 있는 중산시범아파트의 붉은색 벽돌들은 그저 후진한 건축 재료에 머물지 않고 한강을 가로지르며 언제나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풍경들의 부침 위로 던져진 강력한 상징물로 보이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서 본다. 7층 높이의 아파트이지만 건물 사이의 간격이 좁아서 그런지 채광이 좋지 못하다. 어둑한 빛 가운데 오래된 아파트의 눅눅한 풍경이 펼쳐진다. 불과 몇십 미터도 안 떨어졌을 뿐인데 강변로를 달리는 차의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현관을 오르는 계단에 아까부터 앉아있던 할아버지는 카메라를 든 나를 유심히 쳐다보기만 하신다. 앞에 동부터 차례로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는 나에게 그러한 시선은 적잖이 부담이 된다. 어떠한 핑계를 대더라도 나는 이곳 주민들의 삶을 훔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재개발을 앞두고 민감해져 있는 이곳 사람들에게 낯선 이방인이 자신의 집을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는 행위가 순수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1970년에 지어진 중산시범아파트. 1969년에 시작된 서울시의 서민아파트 계획에 따라 지어진 아파트들 중에 하나이다. 다른 서민아파트들이 산위에 전시 되어 있다면 이 아파트는 마포에 있는 용강 아파트와 더불어 강변에 전시된 셈이다. 아파트는 낡을 대로 낡아서 이곳저곳이 세월이 지워놓은 상처와 흔적들로 가득하다 흰색 콘크리트와 붉은색 벽돌은 가까이서 보면 그 재료 자체의 색깔이 아닌 엷은 분홍색과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강변을 지나면서 아파트를 봤을 때 3개 동의 건물이 미묘하게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는 이유가 태양광과의 각도 차이인지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면 미묘하게 다른 색의 페인트가 칠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벽면은 갈라지고 터져서 어떤 곳은 철근이 드러나 있고 그 위로 벽면에서 흘러나온 국물들이 얼룩져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 양옆으로 검은 창들이 쏟아져 내릴 듯 위태하다. 창문마다 달려있는 철재 방범 샷시 안의 좁은 공간에는 화분과 옹기류 바케스 등이 비좁게 자리를 틀고 있고 그 안에서 시작된 전선 줄은 이집 저집을 거쳐 옥상에 달린 안테나로 이어진다. 외부인에게 있어 이러한 이미지들은 가난이라는 수식을 벗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것은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철거의 당위성이 되기도 한다. 구청의 민원게시판에 올라있는 다음과 같은 진술은 이 아파트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어떤 전형적인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서울시의 올해 목표도 외국기업 투자유치 관광 유치 등 많은 외국인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울의 대동맥이고 젓줄 격인 한강 강변로 주면에 이렇게 연탄아궁이에 철골이 다 드러나고 벽이 갈라져 형편없이 미관을 해치고 있는 아파트가 있다는 것이 대외적인 망신이 아닐까 생각되는군요. (중략)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자랑이며 외국 관광객들이 서울에 오면 꼭 들리는 63빌딩 정면 앞에 위치하여 외국인들이 분명 이 나라는 빈부의 격차가 심하게 나는구나 할 정도로 대조적이라 봅니다.”

근대화라는 강박 속에 전쟁을 치르듯 아파트를 지어야 했고 또 그것을 어떤 징표로서 끊임없이 전시해 내어야 했던 시절, 그리고 언제나 선진국의 눈을 의식하며 치러졌던 그 강박의 유령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아파트를 도망치듯 빠져나와서 바로 옆으로 난 육교를 올랐다. 육교 아래로는 강변로를 달리는 차들이 가득하고 강 건너편으로는 63빌딩이 보인다. 이제 막 기울어지고 있는 태양광에 63빌딩은 기다렸다는 듯 황금빛 광채를 뿜는데, 마주한 중산아파트의 벽면은 핏빛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기적이 마주한다. 30년의 시차를 두고 대치한 두 개의 기적은 하나는 폐기될 것이고 또 하나는 계속 진행할 것이다. 그러나 붉은색 벽돌과 황금색 창으로 대변되는 듯한 그 두 기적은 사실은 같은 몸을 가진 두 개의 얼굴이 아니겠는가.

 
*본 글은 금호미술관에서 개최된 정재호 작가의 《오래된아파트》(2005) 전시 도록 중 일부 내용이다.
(정재호, 금호미술관 제공)


정재호,「리버사이드호텔 중산시범아파트 II Riverside Hotel-Jungsan Apartment Buildings II」, 2005, 18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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